[정진영 칼럼] 아이스 카페라떼에서 보는 인생철학

2026-06-11     호남타임즈 기자

[정진영 칼럼] 아이스 카페라떼에서 보는 인생철학

받아들이고 섞이며 완성되는 인생

 

◎ 정진영

‧ 호남타임즈신문 회장
‧ 목포타임즈신문 회장
‧ 행정학박사
‧ 사회복지학박사

 

“우유는 커피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인다. 커피도 자신의 진한 색을 고집하지 않는다. 서로 섞이며 경계는 흐려지고 색은 변하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고집대신 서로 받아들이며 흰색과 갈색은 어느 순간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새로운 색으로 남는다.”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실 때 나는 일부러 젓지 않는다.

컵 안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아래에는 얼음에 우유가 가라앉아 있고, 위에는 진한 에스프레소가 층을 이루고 있다.

얼음은 그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붙잡고 있다. 누구나 흔히 마시는 음료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묘한 질서가 있다.

누군가는 아이스 카페라떼를 받자마자 빨리 흔들어(정신없이) 섞어 마시지만, 나는 그 경계를 그대로 두고 천천히 마신다.

나는 일부러 젓지 않는다. 섞이기 전의 상태 그 경계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서다.

처음 빨대를 깊이 넣으면 가장 먼저 닿는 것은 맨 아래 우유층이다. 부드럽고 순하다. 목을 급하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잠시 위장과 빈속을 달래주고, 부담 없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몸의 긴장을 낮춘다.

삶으로 치면 아직 세상이 완전히 낯설지 않던 시절, 보호와 익숙함 속에서 하루가 크게 흔들리지 않던 때일 것이다. 선택의 무게도, 책임의 그림자도 멀리 있었던 시간. 마치 인생의 어린 시절 같다. 세상은 아직 달고 부드러우며, 부모와 가족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큰 걱정 없이 살아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인생이 늘 우유처럼만 흐를 수는 없다.

빨대를 위로 올리면 진한 커피층이 입안에 들어온다. 쌉쌀하고 묵직하다.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곧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쓴맛 속에서 오히려 안정을 찾게 된다. 사회에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경쟁, 책임, 좌절, 그리고 반복되는 선택의 순간들. 그것들은 대체로 달지 않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쓴맛이 삶을 또렷하게 만든다.

사회에 진출하여 경쟁과 책임을 배우는 청년기와 닮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달지 않고, 때로는 쓰고 거칠다. 하지만 그 쓴맛 속에서 비로소 삶의 깊이를 알게 된다.

우유와 커피는 그렇게 처음에는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컵 속에서 커피는 서서히 내려오고, 우유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우유는 커피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인다. 커피도 자신의 진한 색을 고집하지 않는다. 서로 섞이며 경계는 흐려지고 색은 변하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고집대신 서로 받아들이며 흰색과 갈색은 어느 순간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새로운 색으로 남는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이 그렇다.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 실패와 상처, 기쁨과 슬픔이 세월이라는 얼음 사이를 통과하며 천천히 희석된다. 처음에는 선명했던 흑백의 가치관도 점차 부드러워지고, 옳고 그름만 따지던 마음도 타인을 이해하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덜 뜨거워지는 대신 더 깊어진다.

커피가 우유를 만나 라떼가 되듯, 인생도 경험과 시간이 만나 비로소 사람을 완성시킨다.

우리는 흔히 이를 ‘성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성숙이라는 말은 때로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실제로는 더 복잡하고 느리다. 한순간의 변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며 스며드는 과정에 가깝다. 마치 커피가 우유 속으로 아주 천천히 번져 들어가는 것처럼.

마지막 몇 모금은 특히 그렇다.

처음의 우유도, 처음의 커피도 아니다. 이미 충분히 섞여 하나의 맛이 되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상태다. 굳이 나누려 해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섞임 자체가 이 음료의 본질이 된다.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순수했던 나’와 ‘지쳐버린 나’를 따로 구분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둘이 계속 섞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기쁨도, 실망도, 기대도, 포기도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침전되고 혼합된다. 그리고 그 혼합의 결과가 지금의 얼굴과 선택, 태도를 결정한다.

아이스 카페라떼는 그래서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섞여가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빠르게 소비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잠시 멈추어 바라보면 그 안에 작은 변화의 서사가 있다.

삶도 아마 그와 비슷할 것이다.

완전히 유지되는 것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없다. 다만 조금씩 섞이고, 희미해지고, 다시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 섞임의 결과로 남는다.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호남타임즈>